2009년 02월 15일
족화(足禍)로 얼룩진 세계사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태어난 아킬레스는 갓난아기 시절 어머니에 의해 스틱스 강에 몸을 담근 이래 불사로 알려진 용사였다. 하지만 테티스가 그를 강물에 담글 때 발뒤꿈치만은 손으로 잡아야 했기 때문에 바로 그 부분이 약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 등 수많은 트로이군을 격멸시키는 위업을 세웠으나, 결국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를 납치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아무리 강한 자일지라도 지니고 있는 약점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킬레스 건’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굳이 아킬레스건 때문이 아니라도 발에 대해 그리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명부로 끌려간 것도 그녀의 발이 행한 부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녀는 결혼의 기쁨에 취해 들러리들과 함께 풀밭을 걷다가 독사를 밟는 바람에 발이 물려 이른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발의 장점보다는 오히려 눈과 가장 멀리 떨어진 기관이 당할 수 있는 사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빠른 발’도 큰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서 수훈을 세운 여걸 애틀랜타가 그리스에서 가장 빠른 발을 지니고 있었지만 힙포 메네스의 꾀에 빠져 경주를 지고 만 것이 좋은 사례이다.
사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도 발이란 기관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 발’이란 말을 들으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의 가사가 아니던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님을 버리고 가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좀, 통풍 등의 발병을 앓고 있다. 특히 무좀은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으나 온갖 방법을 써 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고질 병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발병이 통풍에 이르면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이 통풍이란 놈은 핏속에 요산 수지가 높아져서 발생하는 것으로 증상은 발가락이 가려운 정도이나 방치하면 관절염, 심장이나 신장 관련 합병증으로 발전하는 무시할 수 없는 병이다. 그래도 “그것쯤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캐나다의 누리아그라는 지리화학자의 주장을 들어 보아야 한다. 그에 따르면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통풍이었다. 로마인들은 납으로 된 식기와 납으로 만든 상수도 관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납중독에 걸렸고 납중독의 만성 증세인 통풍을 앓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항상 발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건 전쟁이건 잘 할 리가 없다. 그래서 로마가 멸망했다는 것이 누리아그 씨의 독특한 주장이다.
통풍이 국가적 문제가 된 것은 비단 먼 옛날 로마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통풍은 갑작스런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아들의 병역 문제로 고심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건강 문제를 반격 카드로 삼기로 하고 바로 그가 ‘발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 등 의사 출신 의원 네 명은 기자 회견을 통해 김 후보가 복용하는 약품들로 감안할 때 그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그리고 발병인 ‘통풍’을 앓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쯤 되면 우리 정치에서도 발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무좀이나 통풍이 비교적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족화(足禍)라면, 인간의 특히 남성의 심미감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럽게 생기는 족화도 적지 않다. 지난 세기까지 중국 사람들이 여성들에게 권유 내지는 강요한 전족(纏足)이라는 풍습이 대표적인 것이다. 고사(故事)에 따르면 당나라 때의 후궁 요랑은 비단 천으로 발을 싸고 날아갈 듯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녀가 전족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세기 들어 중국이 근대화되면서 전족이 사라져 갔으니 많은 중국 여성들이 천 년 이상 조그만 발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살았다는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하지만 심미감 때문에 생기는 족화(足禍)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현재 전세계 여성들은 하이힐 때문에 남성들보다 95%나 많이 발병을 앓고 있다. 원래 이 하이힐이란 물건은 진흙탕에 드레스가 젖는 것을 피하려는 여성들을 위해 고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금방 하이힐이 만들어 내는 미학적 효과에 주목하게 되었을 성싶다. 즉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키가 커 보이고, 엉덩이가 뒤로 빠지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게 되니 ‘늘씬하고 섹시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하이힐 덕분에 미인은 늘어나게 되었으나 동시에 발병도 늘어났으니 역시 세상에는 거저가 없다.
이쯤 되면 발이란 도움보다는 해악이 큰놈이 아닌가, 하고 순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론 발이 없으면 당신은 매우 괴롭게 된다. 게다가 소위 족화(足禍)들은 대부분 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발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머리 쪽에서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지난날들을 자세히 돌아보면 발에 나쁜 이미지만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근대 무용을 개척한 ‘맨발의 이사도라’, 이디오피아를 일약 마라톤 강국으로 부상시켰던 ‘맨발의 아베베’ 두 사람만 해도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만으로 유명해진 이들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맨발만으로 유명해질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발을 소중히 하자. 우리 조상들은 머리는 차게 발은 항상 따뜻하게 두라고 하셨다. 머리만큼 발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물론 조상님의 말씀이 없더라도 발을 항상 깨끗하게 씻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by | 2009/02/15 14:47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