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화(足禍)로 얼룩진 세계사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태어난 아킬레스는 갓난아기 시절 어머니에 의해 스틱스 강에 몸을 담근 이래 불사로 알려진 용사였다. 하지만 테티스가 그를 강물에 담글 때 발뒤꿈치만은 손으로 잡아야 했기 때문에 바로 그 부분이 약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 등 수많은 트로이군을 격멸시키는 위업을 세웠으나, 결국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그리스 최고의 미인 헬레네를 납치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아무리 강한 자일지라도 지니고 있는 약점을 그의 이름을 따서 ‘아킬레스 건’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굳이 아킬레스건 때문이 아니라도 발에 대해 그리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명부로 끌려간 것도 그녀의 발이 행한 부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녀는 결혼의 기쁨에 취해 들러리들과 함께 풀밭을 걷다가 독사를 밟는 바람에 발이 물려 이른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발의 장점보다는 오히려 눈과 가장 멀리 떨어진 기관이 당할 수 있는 사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빠른 발’도 큰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에서 수훈을 세운 여걸 애틀랜타가 그리스에서 가장 빠른 발을 지니고 있었지만 힙포 메네스의 꾀에 빠져 경주를 지고 만 것이 좋은 사례이다.


사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도 발이란 기관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 발’이란 말을 들으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의 가사가 아니던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님을 버리고 가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좀, 통풍 등의 발병을 앓고 있다. 특히 무좀은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으나 온갖 방법을 써 봐도 잘 떨어지지 않는 고질 병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발병이 통풍에 이르면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이 통풍이란 놈은 핏속에 요산 수지가 높아져서 발생하는 것으로 증상은 발가락이 가려운 정도이나 방치하면 관절염, 심장이나 신장 관련 합병증으로 발전하는 무시할 수 없는 병이다. 그래도 “그것쯤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캐나다의 누리아그라는 지리화학자의 주장을 들어 보아야 한다. 그에 따르면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통풍이었다. 로마인들은 납으로 된 식기와 납으로 만든 상수도 관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납중독에 걸렸고 납중독의 만성 증세인 통풍을 앓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항상 발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정치건 전쟁이건 잘 할 리가 없다. 그래서 로마가 멸망했다는 것이 누리아그 씨의 독특한 주장이다.


통풍이 국가적 문제가 된 것은 비단 먼 옛날 로마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통풍은 갑작스런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아들의 병역 문제로 고심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건강 문제를 반격 카드로 삼기로 하고 바로 그가 ‘발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 등 의사 출신 의원 네 명은 기자 회견을 통해 김 후보가 복용하는 약품들로 감안할 때 그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그리고 발병인 ‘통풍’을 앓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쯤 되면 우리 정치에서도 발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무좀이나 통풍이 비교적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족화(足禍)라면, 인간의 특히 남성의 심미감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럽게 생기는 족화도 적지 않다. 지난 세기까지 중국 사람들이 여성들에게 권유 내지는 강요한 전족(纏足)이라는 풍습이 대표적인 것이다. 고사(故事)에 따르면 당나라 때의 후궁 요랑은 비단 천으로 발을 싸고 날아갈 듯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녀가 전족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세기 들어 중국이 근대화되면서 전족이 사라져 갔으니 많은 중국 여성들이 천 년 이상 조그만 발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살았다는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하지만 심미감 때문에 생기는 족화(足禍)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현재 전세계 여성들은 하이힐 때문에 남성들보다 95%나 많이 발병을 앓고 있다. 원래 이 하이힐이란 물건은 진흙탕에 드레스가 젖는 것을 피하려는 여성들을 위해 고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금방 하이힐이 만들어 내는 미학적 효과에 주목하게 되었을 성싶다. 즉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키가 커 보이고, 엉덩이가 뒤로 빠지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게 되니 ‘늘씬하고 섹시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하이힐 덕분에 미인은 늘어나게 되었으나 동시에 발병도 늘어났으니 역시 세상에는 거저가 없다.


이쯤 되면 발이란 도움보다는 해악이 큰놈이 아닌가, 하고 순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론 발이 없으면 당신은 매우 괴롭게 된다. 게다가 소위 족화(足禍)들은 대부분 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발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머리 쪽에서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사실 지난날들을 자세히 돌아보면 발에 나쁜 이미지만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근대 무용을 개척한 ‘맨발의 이사도라’, 이디오피아를 일약 마라톤 강국으로 부상시켰던 ‘맨발의 아베베’ 두 사람만 해도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만으로 유명해진 이들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맨발만으로 유명해질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발을 소중히 하자. 우리 조상들은 머리는 차게 발은 항상 따뜻하게 두라고 하셨다. 머리만큼 발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물론 조상님의 말씀이 없더라도 발을 항상 깨끗하게 씻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by kayhoon | 2009/02/15 14:47 | 트랙백 | 덧글(0)

첫번째 비결 I speak English!

첫 번째 비결 “I speak english”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 영어를 하는(‘잘 하는’이 아니다!) 첫 번째 비결이자 제일 중요한 비결을 알려드리겠다.

그것은 바로 ‘겁먹지 마라’이다. 영어를 써야 할 때, 결코 겁먹지 말 것이며, 부끄러워하지도 말 것이며, 당황해 하지도, 주눅들지도 마시라.
너무 평범하다고? 사실 평범한 조언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건 영어를 배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것이고, 지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의 중 90% 이상이 첫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넘어가야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수많은 영어 회화 강사들이 강조하고, 수많은 영어회화 책에 쓰여 있어도 또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겁먹지 않는 것,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당황하지 않는 것, 주눅들지 않는 것?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무턱대고 학생들에게 영어 회화 할 때 ?겁먹지 말라?라고 가르치는 건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겁을 안 먹도록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겁을 먹는 원인을 찾아서 그걸 제거해주든지, 아니면 담력을 키우는 비결을 알려주든지, 최소한 겁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말이다. 그리고 필자는 최소한 ?겁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이유?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면 아마 훨씬 덜 겁날 것이다.

그 이유가 뭐냐고?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말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사람인 당신이 한국에 살면서 도대체 영어를 어디에 써먹으려 하나? 대부분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과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것도 비즈니스보다는 일상적인 대화에 써먹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이 한국말을 못하는 건 문제가 되지만, 한국사람인 당신이 외국말을 꼭 잘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당신이 외국인을 만났을 때 상대쪽에서도 당연히 당신이 영어에 능통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고 들어온다. 그러니 당신 발음이 듣기에 좀 이상해도, 문법적으로 어긋난 문장을 내뱉아도 상대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이 정도라도 영어를 말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하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는가? 정말이다. 맨날 영어로 더빙된 영화만 봐서 외계인을 포함해서 전우주 사람들이 영어를 쓴다고 착각하고 있는 극히 일부의 덜떨어진 양키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필자의 말처럼 상대가 조금이라도 영어를 써주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한다. 앞서의 강의를 열심히 읽은 독자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게 부끄럽지 영어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외국인 만나서 당황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조금 아는 영어라도 해주면 상대가 감지덕지 고마워 해야지 당신 쪽에서 영어 모자란다고 미안해할 필요도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경우나, 친구의 외국인 친구를 같이 만나는 경우 같은 사적인 만남이 아니라, 회사에 외국 손님이 찾아왔다든지 하는 공적인 만남이라면? 그 때는 아무래도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질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당황할 거 없다. 만약 그 손님이 중요한 계약을 체결하려고 왔다면 아마도 (영어실력에 자신이 없는) 당신이 응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역할은 영어도 잘하지만 법률 지식에도 밝은 누군가가 대신할 테니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그 낯선 외국인이 회사문을 들어섰는데 당신이 우연히 앞에 서게 되었다면? 침착하게 “Excuse me, what can I do for you?”라고 물으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마치 길에서 만난 낯선 외국인에게 안내를 하듯이 말하면 된다. 상대의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는 ‘Pardon me?’라고 묻고, 그래도 알아듣기 힘들 때는 ‘Would you speak slowly’ 라고 물으면 된다. 상대쪽에서도 당연히 비영어권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차분차분 말해줄 것이다. 그래도 정 말이 안 통하거들랑, ‘Wait a second, please’라고 말한 다음, 당신보다 영어에 능통한 직원을 부르면 된다. 하지만 아마 그 정도까지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 당신이 겁먹지 않아도 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당황해 하지도, 주눅들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이거 정말 중요하다. 절대 까먹으면 안 된다.
당신은 이미 영어를 할 줄 안다.

다음부터 누가 영어로 "Do you speak english?" 라고 물으면 "Yes."라고 대답하라. 자신이 없는 사람은 "Yes, a little bit."이라고 대답하라. 정말 그래도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잘’ 하지 못할 뿐이다. 앞서 강의에서도 말했지만, “영어 못 한다(I don't(can't가 아니다) speak english)”의 반대말은 “영어 잘 한다(I speak english well)”가 아니다. “영어 못 한다(I don't speak english)”의 반대말은 “영어 한다(I speak english)”이다.

독자들 중에 고등학교 졸업 안 한 분이 몇 명이나 되는가? 누차 말하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했다면 최소 6년 동안은 영어공부를 한 셈인데, 영어를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나? 다 까먹었다고? 아무리 까먹어도 당신이 선생들에게 맞으며 외운 단어들, 문장들은 당신의 뼛속에 박혀 있다. 당신이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다. 당신이 필요한 순간에 꺼내지 못할 뿐이다.

“I speak english”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앞서 필자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말 하세요?”란 질문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만 알아도 “네, 조금”이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영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필자가 보기에) 영어를 아주 조금만 알아도 “I speak english”라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그들은 실제로 자신이 영어를 쓸 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길에서 어떤 중년의 백인이 말을 걸어왔다. 필자에게 뭐라고 질문을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Do you speak english?” 그랬더니 이 사람 매우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Yes, I do.”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 발음이 아주 생소하긴 했지만 그게 영어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필자는 “Ok, then, Speak slowly, please”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그는 “Where tourist office?” 식으로 거의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수준의 영어를 ‘듣도 보도 못한 발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천천히 말해주니 대강 알아들을 만 했다. 알고 보니 그 중년의 백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사람이었다.

하여튼 결과를 보라. (필자가 보기에) 문법적으로도 옳지 않고 발음도 매우 이상한 영어를 하는 우크라이나인은 스스로 영어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필자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보다 더 잘 하면 좋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해서 영어를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특히 영어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칼럼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 같은 사람이라면) 그 우크라이나 사람보다는 영어를 더 잘 할 수 있다. 안 해서 못 하는 거지 못 해서 안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정말 당신은 할 수 있다. 다만 네이티브 스피커나 유학파 정도로 잘 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네이티브 스피커 정도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유학파 정도로는 영어로 듣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Yes, a little” 이라고 했는데 외국인이 잘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이것 저것 막 물어오면 어떡하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Please speak slowly." 그러면 상대는 당연히 천천히 말해준다. 상대의 말 중에 알아듣기 힘든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아예 스펠링을 불러달라고 하라. "How do you spell the word?" 혹은 "Would you tell me how you spell it?" 아마 대부분 당신도 아는 단어이고 아는 문장일 것이다. 당신 쪽에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또박또박 크게 말하라. 물론 소리 지를 것까지는 없다. 천천히, 또박또박, 분명하게 들릴 정도로만 크게 말하면 거의 다 통한다.

영어는 굴려야 맛이라고 일부러 혀를 굴리면 오히려 안 통하기 쉽다. 미국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굴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아직 영어에 자신이 없는 분이라면 굴리는 거 좋지 않다. 어슬프게 굴리기 보다는 그저 학교에서 배운대로 발음하는 게, 다시 말해 발음기호대로 발음하는 게 좋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딱딱한 영어’로 발음하면 전세계 사람들이 대체로 알아듣는다. 물론 아무리 해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면 역시 스펠링을 불러주어라.

그리고 문법. 문법에 맞으면 좋겠지만 틀려도 큰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원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아닌가 이다. 대체로 이야기 중 중요한 몇 가지 단어가 전달된다면 그 대화는 성공한다. 전달되지 못했다면? 그 정도야 이야기하다 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자, 요약해 보자. 당신은 이미 영어를 할 수 있다. 이거 확실한 사실이니까 확실하게 기억해두시라. 그러니 혹시 외국인과 대화해야 할 상황이 오면 절대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신이 아는 단어와 문장으로 응대하면 된다. 발음은 천천히 또박또박, 문법은 너무 신경쓰지 말고. 우선은 영어로 입을 여는 것이 중요하지 ‘정확하게’ 여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영어 강사들이 ‘fluency’가 ‘accuracy’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인식하고 있으면 일단 영어로 입을 여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간단한 대화라면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이제까지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실 터이다. 흔히 말하는 ‘시작이 반’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시작’했다고 영어가 갑자기 유창해지는 건 아니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 희망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대체로 첫 대면이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말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앞으로도 필자가 이야기한대로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소신껏, 당당하게 듣고 말하면 자신의 영어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할 것! 한국사람이 영어 못하는 건 죄가 아니지만 영어 못 한다고 부끄러워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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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자님 | 2006-03-08 오후 6:2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good!!! 앞으로 나도 영어해야지...
늑대개vxn~ | 2006-03-13 오전 9:5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도 할 수 있으까나...일단, 믿고...입만 열어주삼~~
하니리 | 2006-03-30 오후 5:0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읽고 보니 나도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넹...ㅋㅋㅋ

by kayhoon | 2007/09/02 21:48 | 영어 잡담 | 트랙백 | 덧글(0)

디 워, 크랩태큘러 craptacular~

(이번에는 제 글입니다. 재활용 아닙니다. ^^)
1.

어젯밤 강동 CGV 9시25분 영화를 봤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극장 안에 들어가니 "이건 한국의 전설인데..." 하는 장면이 흘러가고 있더군요.

하여튼 결론적으로, 볼만 했습니다. 뭐 처음부터 대단한 스토리텔링이나 복선, 반전 같은 걸 기대한 게 아니라, 그저 괴물들이 LA를 무지막지하게 때려부수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괴물들은 아주 만족스럽게 난장판을 쳐주니까요.

초반부가 조금 지루하다고 하던 사람들도 있던데 전 시간이 상당히 잘 가더군요.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이무기 뱃살이 출렁거리고 악마의 군단이 조선시대 마을을 습격하고 등등... 하여튼 제 기준으로 볼 때는 지루한 영화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스파이더맨3을 볼 때도 옆에서 졸던 저의 영화메이트가 이번에는 눈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더군요.

'볼만 하다' 말고 영화의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저는 크랩태큘러 craptacular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에인잇쿨뉴스에 리뷰를 보냈던 어떤 친구 말대로 아무 생각없이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누차 지적된 바, 연기 스토리텔링 편집 모두가 엉성하지만 "아무 이유없어!"하고 마구 지나가 버리니, 저같이 무딘 관객은 그게 이상했다고 느끼기도 전에 어느새 LA를 습격하는 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LA전투씬이 끝나면 바로 죽음의 제단을 앞에 두고 착한 이무기와 나쁜 이무기의 또다른 전투가 이어집니다. 분석이고 뭐고 할 시간을 안 줍니다. 어느새 전투가 끝나고 용이 승천하고 나면 후다다닥 영화가 끝나버리고 심형래 인간극장이 이어집니다. (전 인간극장 시작할 때 바로 나와버렸습니다.)

하여튼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 만든 영화도 아닙니다. 이거 참 묘한데요. 심감독은 잘 뽑아낸 전형적인 미국식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어했는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그 옛날 미국에서 유행했던 괴물 나오는 B급 영화의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연기고 스토리고 뭐고 그저 무시무시한 괴물이 한시간반 동안 관객들을 놀래키는 영화 말이에요.

2.

영화를 보고 나니 디워를 둘러싼 논쟁들이 더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제 감상으로는 별 논쟁거리가 될 만한 영화가 아니거든요. 그냥 괴물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와 거리며 보고 말면 그만인 영화니까요. 전 이 영화가 심지어 진지한 비평의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평하고 말고 할 것조차도 없다니까요. 물론 독수리오형제에서도 "일본인들의 의식속에 잠재한 핵공포" 따위를 읽어내는 비평가들이 있겠지만, 킬링타임용 무비 하나를 두고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나오는 평론가들은 잘 없지요. 네, 그래요. 이건 전형적인 '킬링타임'용 무비거든요.

그런데도 소위 '논쟁'이란 게 일어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걸 '영화'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전 바로 그 부분이 좀 마뜩치가 않습니다.

솔직히 전 디워가 미국시장에서 얼마나 선전할 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그 전에 우리나라 영화의 '산업적 측면'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야 뭐 한 사람의 영화팬에 불과하고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그저 재미있는 영화들이 쏟아져나와서 제게 계속 즐거움을 주면 좋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왕이면 한국영화가 잘 되면 좋지요. 하지만 솔직히 그걸 '아주 열심히' 바라진 않아요. 전 삼성전자의 애니콜을 쓰고 있는데 이왕이면 애니콜이 해외에도 잘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모토롤라나 노키아가 애니콜을 작살낸다 해도 "뭐 할 수 없지. 삼성이 좀 분발해야겠네" 정도로 생각하고 말 겁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녀보니 바로 그 "디워의 산업적 성공, 한국영화산업의 부흥"에 관심있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이런 거 볼 때마다 한국영화계는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일하는 업계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거든요. ㅠㅠ

3.

정말 영화 자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버얼써 끝났을 것이, '애국심'이니 '인간극장'이니 따위가 끼어들어서 논쟁이 길어진 것 같아요.

사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많은 한국영화들이 애국심 마케팅을 해왔고 디워가 예외는 아니지요. 한반도, 태풍, 괴물 등등 소위 '블록버스터'가 개봉될 때마다 '한국영화의 자존심' 어쩌고 하면서 관객들을 유혹했고, 영화사나 언론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타는 걸 무슨 올림픽 메달 따는 것처럼 홍보하고 관객들은 그에 은근히 동조하기도 했지요. 디워가 전례없이 미국에서 대규모로 개봉된다는 걸 감안할 때, '애국심 마케팅'을 안 써먹으면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장사꾼 입장에선 통하는 걸 알면서 안 써먹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누구 말대로 애국심이든 어떤 마케팅이든 아무리 열심히 마케팅을 해도 영화 자체에 매력이 없으면 오래 못 가요. 예전에 직접 그런 사례를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한 적이 있는데요. 마케팅은 초반에 위력을 떨칠 뿐 결국에는 관객들의 입소문이더라구요.

4.

논쟁 와중에 뜬금없이 '대중독재' 어쩌고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더군요. 혹자는 노무현, 황우석 등과 비교하면서까지 '디워현상'을 비판하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번에도 (스스로)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오버 내지는 엄살입니다

황우석이야 어차피 대중들의 논쟁감이 아니었는데 유행을 탄 것이지만, 노무현과 디워는 정확히 대중들의 영역에 속하는 게 맞거든요. 투표권이 있는 자라면 누굴 대통령으로 뽑을 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영화표 살 돈이 있는 자라면 어떤 영화를 보든 지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영화를 옹호할 자유도 있는 것이지요.

다만 그 와중에 역시 오버하는 찌질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독재'라니요. 독재 구경도 못해봤나요. 영국의 훌리건들이 개난리 친다고 '훌리건독재'라는 표현을 쓰던가요?

그건 그렇고... 잠깐 곁길로 새어가서 '대중'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대중'이란 용어 자체가 약간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이야 대중, 대중문화, 대중매체 등등 대중이란 용어가 흔하지만, '대중'은 역사가 오래된 개념은 아닌데요. '대중 mass'이란 용어를 맨 처음 유행시킨 사람은 아무래도 스페인의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고 기억합니다.

그는 어차피 세상은 귀족들이 지배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대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예전에는 (흩어져 있을 때는) 신민, (모여봐야) 군중에 불과했던 (아무 것도 모르는 천박지축 같은) 이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기미를 보이더라 이겁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그걸 보고 "앗, 뜨거라." 한 거죠.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대중의 반역]은 바로 그런 걱정을 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민이나 군중이 아닌 '대중'이 '대세'가 된 이후, 좌파학자들도 그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도르노인데요. 그는 대중문화란 것이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창조한 게 아니라 엘리트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고 대중들은 무비판적으로 소비만 할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중문화'란 용어 대신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고수하지요. (요즘 유행인 '문화산업'이란 용어에는 이런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렇게 좌파든 우파든 대중들을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능력(혹은 자격)이 없는, 귀족보다는 확실히 열등하고, 시민으로 성장하지는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혹시 이 게시판에서 스스로 지식인 혹은 엘리트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스스로 물어보세요. 대중 혹은 대중의 판단을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저 역시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인들 대부분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으로 성장한 이들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책임있는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요. 왜냐하면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이거든요. 내가 싫어도 사람들이 집합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전 무척 싫어했지만 사람들이 '실미도'를 사상최고흥행영화로 만들어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대중시대의 부작용인가요? -_-;; 하지만 독재라고 부르긴 어렵겠죠.

디워는... 글 쓰다 보니 벌써 내용이 가물가물하네요. -_-;; 그런 영화에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시간 때우기에 좋은 영화. 이렇게 논쟁이 붙을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게 제 결론...

by kayhoon | 2007/08/06 20:06 | 문화 잡담 | 트랙백 | 덧글(0)

(최초로 퍼온글) 디워 - 막나가는 재미있는 영화.

(어제 밤에 그 말많은 디워를 보고 평을 하나 쓸까 하다가 제 감상과 아주 유사한 글을 하나 발견해서 그냥 퍼오기로 했습니다. 출처는 디비디프라임 영화게시판 kusuri님의 글입니다. 제 블로그 사상 최초의 '펌'입니다.)
1. 디워와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들 때문에 예고편을 보고 설레이던 흥분도 잠시 인터넷의 넘치는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 영화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기담을 보러 찾은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속는셈치고 디워를 보았습니다.

2. 영화는 일단 매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굳이 장단점을 나열할 필요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으니 곱씹어 볼 필요도 없을테지만, 몇가지 떠오르는 상념들이 있어 글을 적게 되네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 제가 본 디워는 대자본이 투입된 싸구려 B급 영화의 최고봉이었습니다. 대자본과 싸구려라는 말이 모순이지만, 대자본은 물리적으로 거액의 돈이 투자되었으니 그러한 것이고 싸구려라는 것은 그 감성면에서 웰메이드와는 반대의 자리에 위치한 B급 영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디워의 줄거리가 그다지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직설적이고 단순해서 군더더기가 전혀 없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트랜스포머와 같은 속칭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소시민이 초인적인 병사가 되고 미국의 장성급들은 하나 같이 람보로 돌변하고 일개 병사들이 순식간에 적의 약점을 파악하여(어떻게?) 적을 섬멸하고 아이와 여자와 개는 죽지 않는등의 클리셰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지나치게 착한 척을 한다고나 할까요? 미국 영화중에서 그런 반대편에 위치한 영화들이 창조적이고 참신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호러 영화같은 B급 영화들이죠. 이들 영화들은 메이져의 정서와 클리셰를 비틀고 조롱함으로써 그 재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면에서 '디워'는 확실히 B급 영화의 정서를 담고 있어요. 착한 이무기와 나쁜 이무기가 싸워서 착한 녀석이 승리한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현란한 CG로 보여주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은 그냥 무시합니다. 편집은 뚝뚝 끊어지고 한번 등장했다가 필요없어진 인물들은 다시 언급되지도 않고 그냥 영화에서 없어져 버립니다. 다시 등장하지도 않아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말 그대로 주인공을 도와주기 위해 등장했다가 필요한 도움을 준 뒤 그냥 영화에서 사라져버리고요. 이든의 기자 친구는 병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차를 대기시켜두고 헬기를 동원해 주지만 그외 어떤 군더더기 행동도 하지 않아요. 헐리우드 영화였다면 아마 힘들게 죽어가면서 친구가 마음 아파하는 장면을 넣던가 이 친구의 정서를 조금더 강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이닥친 브라퀴의 군대와 포졸들이 싸울 때는(이 얼마나 기묘한 정서란 말입니까? 포졸들과 괴물들이 싸우다니요.) 여타의 영화들 같았으면 공룡과 철갑으로 무장한 전사들을 보면서 일단 무지하게 당황했겠죠. 하지만 디워에서는 그냥 싸웁니다. 아무도 조선시대에 공룡이 쳐들어온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요. 그냥 다른 민족이 쳐들어온 것 마냥 싸웁니다. 이야기가 그러하니 등장인물들이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지 않아요.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 새라는 여의주가 되어 죽어버리고 가슴 아파하는 이든에게 '난 이제 떠나요'라며 정말로 죽어버립니다. 아마 헐리우드 영화였다면 이런식으로 두부 자르듯이 떠나지는 않았을 거에요. 불필요한 감정을 강요하며 조금더 질질 짰을거라 생각해요. 디워는 그런 군더더기-어쩌면 친절한 이야기를 위한 웰메이드의 요소여야할-들이 모두 없습니다. 정말 쿨하지 않습니까? 이런 막나가는 단순한 구성이기에 마지막 시가전 전투나 착한 이무기와 나쁜 이무기의 장면이 더욱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4. 대부분 후반의 10분을 보기 위해 전반전을 감내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초반부의 CG도 그리 나쁘지 않더군요. 이건 제가 홍콩 쇼브라더스의 어처구니 없는 영화들이나 저예산 호러영화에 적응이 되어 있는 탓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적인 것을 담았다고 했을 때 속으로 아리랑이나 영화와 어울리지 않게 넣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조선시대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마 심형래 감독 같이 순진한-어쩌면 바보같다고 해야할지도- 열정과 뚝심이 있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만들었을 장면 같은데 이게 꽤나 멋지더군요. 물론 전투장면은 형편 없었습니다. 병사들의 진행장면은 모두 열과 오를 맞춘 압도적인 인원수의 스펙타클로 보여주지만 개개의 액션장면은 여백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대규모 전투를 보여주기에는 마치 다른 영화들을 끼워맞춘 듯이 포졸들과 브라퀴 군대가 따로 놀게끔 연출이 되었구요.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장면을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더군요. 누가 감히 이런 유치한 상상을 큰 돈을 들여 스크린으로 보여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5. 종반의 시가지 전투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물론 디테일이 너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시내를 통과하는 이무기의 모습이나 킹콩에서 본 따왔을 것이 뻔한 빌딩을 감고 이무기가 포효하는 모습은 가히 명불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텅비어있는 화면들은 아쉬움을 많이 남기더군요.

6. 영화가 엉망이라도 CG와 액션이 훌륭하면 용서해준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엉망이라도가 어느만큼을 지칭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형편없는 것 까지 일까요, 아니면 편집과 연출력이 엉망인 것일까요, 아니면 배우들의 연기가 형편없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사가 유치하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모두와 제가 모르는 어떤 것들을 포함해서 일까요? 이런 판정이야 말로 정말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정답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개인 취향의 문제이고 이런 판단자체가 개인적이기 때문에 정답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7. 심형래 감독이 의도적으로 이런 식의 B급영화를 만들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아마 속칭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고 싶었겠죠. 하지만 제가 본 결과물은 확실히 B급 영화였고 그건 꽤나 근사한 경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의 목적이 본래 B급 영화지향이 아니었기에 영화의 완성도와 관련해서 많은 설전들이 오고 가는 것 같습니다.

8. 애국심으로 영화를 보라! 애국심으로 영화를 보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분이 어찌되었든 폭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미이자 취향입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도 편가르기를 하도 으르렁 거리니까 이건 흡사 같은 민족을 사냥하는 내전을 보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9. 영화 마지막에 심형래 감독이 자신의 소신을 엔딩 크레딧에 넣어두었더군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꽤 불편했습니다. 심형래 감독 자신은 아마도 그간의 설움과 고독감에 대해서 어필하고 싶었을터인데 이런 장면 자체가 자신의 영화에 자신이 없다는 반영이 아닐까 생각되어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오기를 품고 열정을 펼쳤을 영화인데 꼭 구차하게 마지막에 이런 변명아닌 변명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요. 그렇게 자신감있게 언론에서 얘기했으면 끝까지 냉정하게 대중의 평가를 기다릴 자신감도 함께 갖추고 있어야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0. 저는 심형래 감독의 본래 의도와는 어쩌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즐겁게 감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쨋든 창작자의 손을 떠나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호오는 그걸 감상하는 개인에게 있다고 봅니다. 재미가 있든 없든, 어떻게 보여지길 바랬든간에 관객의 손에 주어진 영화의 또다른 주인은 관객이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칭찬하면 장점을 받아들이고 비판을 하면 비판에 대해 자신이 판단을 하고 수용하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심형래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대가 됩니다.

by kayhoon | 2007/08/06 17:26 | 문화 잡담 | 트랙백 | 덧글(0)

제대로 된 영어를 써야 한다?

네번째 강의
(오늘은 필자의 책 ‘콤플렉스를 부수면 영어가 터진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번 강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외국인을 만나면 당연히 영어로 응대해줘야 하고, 자신의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면 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외국인들은 한국사람들과 반대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영어를 써주면 우리의 발음이 어떻든 문법이 어떻든 고맙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설사 우리가 한 마디도 영어로 말해주지 않아도 ‘한국에선 영어가 잘 안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지 결코 한국이나 한국사람들을 폄하하지 않는다. 일부 ‘영어제국주의’적 마인드를 지닌 ‘네이티브 영어 사용자’가 국제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 드리겠다. 다음을 보라.

해외 여행을 하는 영어권 나라 사람들의 마인드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예전에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낭족 사이트 lonelyplanet.com에서 어느 영국인들(이름으로 보아 아마 여성들일 것 같다)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 통신체'인만큼 오자와 약어가 많이 등장한다. 감안하시라.)

Calling all British people! . Hi We're in Koh Samui at the moment & are planning 2 go to Ko Phan Yang then 2 Phi Phi but so far we've met no poeple who can speak proper english as everyone seems to be Dutsh or from isreal. No offence at all to these people but it would be nice 2 have a normal conversation without the language barriers! XCXDX
Charlotte & Donna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영국사람들 모여라! 안녕, 우린 지금 사무이 섬에 있어. 다음 코스로 판양 섬에 갔다가 피피 섬으로 가려고 해.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제대로 된'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아. 모두 네덜란드 아니면 이스라엘에서 온 사람들이야. 물론 그 나라 사람들 욕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언어장벽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싶어라! XCXDX
샤알롯과 다나

요약하자면, 태국의 사무이 섬에 갔는데 거기에 놀러온 다른 나라 사람들 영어가 좀 이상해서 재미없으므로 영국 사람들 좀 만나고 싶다. 그런 이야기다. 말 된다, 라고 생각하시는 독자가 있을 지 모르겠다. 과연 그들의 바람은 다른 여행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다음을 보라.

I really hope this is a troll. Otherwise, you're giving us Brits an extremely bad name with such lines as "Proper English". Stay at home if you only want discussions in what you call "proper english". It is offensive to call other people who have made the effort to talk to us in our language, "A language barrier". Do you speak any Dutch or Hebrew?. If not, then dont just expect everyone else to adjust themselves to you.

이거 낚시글이지? 아니라면 니네들은 우리 영국 사람들 욕먹이는 인간들이야. '제대로 된 영어'라고? 소위 '제대로 된 영어'로 대화하고 싶으면 그냥 집에 죽치고 있을 일이지 왜 거기까지 갔냐? 우리 언어(영어)로 말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지 '언어장벽'이라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니네들은 네덜란드어나 헤브루어(유태인들이 쓰는 말) 할 줄 아냐? 아니라면 딴 사람들이 다 니네들 입맛대로 해주길 바라지 마라.

며칠 동안 이런 식의 비난이 수십개나 리플로 이어졌다. "다른 언어를 배워봐. 그럼 문제가 없을 거야." "비영어권 나라에 놀러 가서 별 기대를 다 하네" "'언어장벽'이 있는 게 오히려 재밌지 않냐?" 등등등등.

당연한 반응이다. 영어 안 쓰는 나라에 가서 자기 나라에서처럼 말이 통할 것처럼 생각한 이들이 잘못이다. 게다가 정황으로 보아 이들이 만난 네덜란드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영어'로 이들을 응대했다면, 그 정도 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불평을 하고 있다면 욕 먹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랬더니 기가 죽은 두 영국인,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Why do people have 2 make such a big deal out of it! No i dont speak Dutch or Hebrew and I wasnt being offensive 2 anyone, i was just asking cause there arent as many British people here as i exected(아마 expected의 오자인 듯)!
Get a life and stop making everything into a drama!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왜들 그래? 난 네덜란드어나 헤브루어는 못 해. 하지만 누굴 모욕하려고 한 건 아냐. 난 그냥 근처에 생각만큼 영국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물어본 거야.
정신 차려! 아무 것이나 쓸데없이 부풀리지 마!

하지만 이건 실수였다. 조용히 사과하고 물러났으면 될 일을 괜한 오기로 부풀린 건 바로 그녀들이었다. 당연히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그 리플들 중 일부를 소개해보자.

i don't think anybody ELSE needs to get a life here. if you go on a website which is all about travelling to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to meet other people from other cultures and exchange ideas, then to ask where all the other brits are in THAILAND, i think you've got what you deserve.

여기에 정신차려야 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희들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태국'에 다른 영국인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으니 그런 욕 먹어도 싸지.

You speak such proper English that you can't even spell "Dutch" and "Israel". Not insulting anyone?

니네들이 그렇게 제대로 된 영어를 한다면서 '더치'와 '이스라엘' 철자들도 엉터리로 쓰냐? 그건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고 생각하냐?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영어' 운운했던 그들은 본전도 못 찾고 말았다.
자, 그럼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전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영어 쓰지 않는 나라에 가서 영어가 잘 통하길 바라는 건 바보짓이라는 걸 배운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영어가 통하면 그걸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전세계 여행자들의 일반적인 의식이고 윤리다.

만약 어떤 영어권 여행자가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 "한국에 갔더니 영어가 안 통하더라" 투의 불평을 늘어놓았다면 바로 다음 순간 천하의 몹쓸놈이란 욕을 들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이런 저런 신문들이 '영어가 안 통해 외국 손님들 큰 불편' 따위 제목의 기사를 내더라도 싹 무시해버리자. 쓸데없는 자격지심이다.
평리거사 | 2006-03-04 오전 11:2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원타
마이싱5 | 2006-03-06 오후 1:3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자! 가자구!
하니리 | 2006-03-30 오후 5:3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옷....약간의 엉터리 영어도 영어로 통하는구나...흐..

by kayhoon | 2007/05/26 10:15 | 영어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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